(6) 숙성 - Wet aging vs. Dry aging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소를 가장 세분화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알뜰하게 먹는 나라이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숙성에 대해서는 경시해 온 것이 사실이었다. ‘오늘 잡은 소’라는 표현이 광고용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만 봐도 명백하다. 생간이나 천엽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소 잡는 날’은 오히려 피해야 마땅한 날이다179). 오늘 잡은 소라면 숙성은커녕 사후강직도 안 풀린 상태라고 봐야 한다. 오늘 들어온 생선은 좋은 물건이지만, 오늘 들어온 고기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스테이크 전문점이 늘어나고, 여행이나 출장을 통해 외국의 숙성 쇠고기를 접해 본 이들이 늘면서 숙성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숙성을 하는 경우에도 비교적 단기간의 습식 숙성(Wet aging)이 주를 이루며, 장기간의 숙성 혹은 건식 습성(Dry aging)은 최근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시장 점유율이 미미한 편이다180). 게다가 외국 원서를 제외하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줄 대중서도 없고, 인터넷 매체들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거나 심지어는 틀린 내용들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아, 적잖은 미식가들은 물론이요 일부 요리사들마저 숙성에 대한 환상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언비어와 헛된 속설을 배격하고, 과학의 눈으로 숙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 숙성이란 무엇인가 - 숙성의 기초 숙성은 크게 건식 숙성(dry aging)과 습식 숙성(wet aging)으로 나뉜다. 고기를 진공 포장하여 공기와 맞닿지 않게 하면서 저온에서 숙성하는 것이 습식 숙성이고, 고기를 통째로 저온 다습한 환경(주로 1~3oC, 습도 7~80%)에서 ‘널어 말리는’ 것이 건식 습성이다. 가끔 ‘옛날에는 모든 고기가 건식 숙성 고기였다’는 식의 이야기가 돌아다니는데,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 ‘건식 숙성’과 우리가 이야기하는 ‘건식 숙성’과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어쩌다 보니 의도치 않게, 그것도 매우 랜덤한 수준으로 숙성의 효과를 조금 얻은’ 것과 ‘잘 통제된 환경에서 내가 원하는 정도로 숙성의 정도를 조절하는’ 것의 차이는 말할 필요조차 없이 크다. 생각해 보라. 여름에는 찜통마냥 덥고 겨울에는 귀가 떨어져나가도록 추운 대한민국에서, 주방에 고깃덩어리를 방치하는 것과 냉장시설이 없는 차에 고기를 싣고 다니는 것을 ‘숙성’이라 불러도 좋을지를 말이다. 건식이나 습식 모두, 기본적으로는 세포의 자가소화를 이용하여 고기를 부드럽고 맛있게 만드는 것이 제1 목표이다. 단계별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사후강직 - 아직은 고기가 아니다 앞서 말한 사후강직 현상에 의해, 고기는 먹기 힘들 정도로 단단해진다. 이는 액틴과 미오신이 단단하게 결합하기 때문인데, 이 결합을 떼어내기 위해서는 에너지(ATP)가 필요하다. 물론 죽은 동물에서는 더 이상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이 결합 자체를 뗄 수는 없다. ② 자가소화의 시작 - 사체를 고기로 만드는 효소의 마법 세포에는 소화 효소가 들어있다. 물론 음식물을 소화하는 것은 소화기관의 역할이니, 그걸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이들은 잘못 만들어진 단백질이나, 환경이 변하거나 오래되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세포 구성 물질들을 부숴서 원재료로 되돌리는 데 쓰인다. 이 효소들은 ‘프로그램된 세포 자살’로 불리는 아폽토시스(apoptosis) 과정에도 필수적인데, 고쳐 쓰기 어려울 정도의 문제가 생겼거나, 쓸모가 다한 세포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과정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이 생의 끝이 다가옴을 느낄 때 주위를 단정히 정리하는 것처럼, 세포도 이들 효소들을 이용하여 DNA와 다른 세포 구성 요소들을 잘게 부수고 정리하여 주위 세포들이 흡수하기 좋은 상태로 만들어 놓은 채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181). 물론 평소에 이들이 멀쩡한 것들까지 소화시키면 곤란한 일이 벌어지므로, 이들은 막으로 둘러싸여 격리되어 있다. 하지만 세포가 죽으면 이들이 새어나오게 되고, 이들이 세포와 조직을 이루는 단백질, 지질, 탄수화물 등을 공격하여 분해하게 된다. 이를 자가소화 (auto-catalysis)라 부른다. ③ 자가소화 #1 - 단단한 고기를 부드러운 고기로 자가소화 과정 중에 칼페인(calpain)과 카텝신(cathepsin)을 포함한 다양한 단백질 분해 효소들이 액틴과 미오신, 그리고 콜라겐을 분해하게 된다. 이를 통해 사후강직으로 단단해진 근육이 부드러운 고기로 변하는 것이다. 또한, 콜라겐 등의 결합 조직은 열을 받아 익게 되면 수축하는데, 이 과정에서 근섬유를 쥐어짜 수분을 잃게 만든다182). 이러한 결합 조직이 분해되는 것은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 뿐 아니라, 구워진 고기가 더 많은 수분을 간직할 수 있게 한다. ④ 자가소화 #2 - 밍밍한 고기를 풍미있는 고기로 또한 자기소화 과정에서 글리코겐은 포도당으로, 단백질은 글루탐산을 포함한 아미노산으로, ATP는 IMP로, 지방은 다양한 지방산으로 분해된다. 포도당은 당연히 단 맛을 내고, 글루탐산은 미원의 성분이며, IMP는 핵산계 조미료의 주성분이고, 지방산은 다양한 향을 내는 물질이다. 다시 말해, 자가소화를 통해 ‘맛있는 물질’들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쇠고기는 경우 약 3주 (21일), 돼지의 경우 5일 정도면 끝난다.183)184) ‘오늘 들어온 소’를 구매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아시겠는가? 오늘 잡은 소가 좋은 소이던 시절은 냉장유통의 도입과 함께 끝장났다. 21세기에 살면서 19세기의 논리를 따라 굳이 맛이 덜하고 질긴 고기를 사다 먹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육회가 아닌 구이를 원한다면 신선한 고기는 맛있는 고기가 아니다. 숙성된 고기가 정말로 맛있는 고기다185). * 무엇이 더 나은가 - 건식 숙성 vs 습식 숙성 이쯤 오면 질문이 하나 나올 법도 하다. 건식이나 습식이나 동일한 과정을 거쳐 숙성이 진행된다면, 손쉽게 진공 포장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대신에 굳이 힘들고 위험하게 고기를 널어 말릴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답은 간단하다. 추가적인 향과 응축된 맛이다. 추가적인 향은 고기 표면에 자라는 균류 및 박테리아들에 의한 일종의 발효과정을 통해 얻어지며, 또한 지방의 산화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그리고 응축된 맛은 수분의 증발로 인해 맛 성분의 농도가 진해지면서 나타난다. 자, 이쯤 되면 질문이 쏟아질 법도 하다. 고기 표면에 곰팡이를 키운다면, 썩은 고기를 파는 건가요? 지방이 산화되는 거면 산패가 아닌가요? 앞에서 수분을 잃은 고기는 주방의 신을 데려와도 못 살린다고 해놓고, 왜 여기서는 수분을 증발시키면 맛이 진해진다고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죠? 진정하시라. 모두 훌륭한 질문들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건식 습성 방식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흔한 오해 중 하나가, 건식 습성이 스테이크 덩어리를 널어 말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절대 아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먹을 수 없게 말라비틀어진 (혹은 상해버린) 육포밖에 건질 게 없을 테니 말이다. 구이용으로 썰어놓은 스테이크 조각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갈비짝이 그대로 붙어 있는 대분할 등심 한 짝이나, 질긴 막과 지방으로 둘러싸인 채끝 한 짝을 통째로 널어 말리는 것이 바로 건식 습성이다. 물론 표면에 박테리아도 자라고 곰팡이도 자랄 것이다. 아, 김치도 먹고 치즈도 먹는 분들이 왜 그리 겁을 내시나. 대한민국 사람 치고 김치를 ‘썩은 음식’이라 부를 이가 있기는 한가? 오히려 이 미생물들이 바로 독특한 향의 원천이니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길면 두 달에 달하는 건식 숙성 과정동안 고기 표면은 바싹 마르게 된다. 약 45일이 지나면 최대 30% 정도의 수분을 잃게 되며, 맛 성분은 그만큼 농축된다. 사실 여기 함정이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커다란 등심 한 짝을 통으로 말린다고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표면이 마르지 속은 거의 마르지 않는다. 그리고 대분할 등심 한 짝에서 꽃등심 등등을 뽑아내는 정형 과정 중에, 이 말라붙은 껍데기들의 대부분은 어차피 썰려 나갈 부분이었다. 정리하면, 큰 덩어리 고기를 말려서 먹는데, 실제로 곰팡이가 피고 말라비틀어지는 부위는 어차피 상품성이 없는 부위가 대부분이다. 별 볼 일 없는 부위를 새로운 향을 만들어 줄 곰팡이가 자라는 토대이자, 안쪽의 진짜 ‘고기’가 완전히 마르지 않도록 보호하는 껍질로 사용하고 미련없이 버리는 것이다. 끝내주는 아이디어 아닌가? 버리는 부위를 제물로 써서 최고급 고기를 소환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림 45. 건식 숙성 방식> 사진은 미국의 유명 정육업체 Pat LaFrieda의 숙성고 모습이다. 건조 숙성이란 스테이크 조각을 말려서 먹는 것이 아니다. 이런 짓을 했다가는 아까운 고기를 버리게 된다. 뼈나 지방층이 그대로 붙어 있는 큰 덩어리를 통째로 널어 말리는 것이 건식 숙성 방법이다. 그리고 최종 단계에서 균과 곰팡이가 자란 바깥쪽은 미련없이 잘라낸다.186) 물론 표면만 마르는 것은 아니고, 실제 고기가 되는 부분에서 약 10~15% 정도의 수분을 잃는다. 장기간 숙성한다면 20% 이상 줄어들기도 한다. 치명적인 것 아니냐고? 물론 습식 숙성을 거친 고기에 비교하면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수분을 내주고 향을 취하는 것이니 그건 어쩔 수 없다. 또한 물을 줄줄 흘려대는 PSE 고기와는 다르다. 건식 숙성 과정에서는 말 그대로 ‘수분’만 날아가지만, 망한 고기에서는 맛을 내는 성분이 녹아있는 ‘육수’를 흘리기 때문이다. 국에 비유하면 국물을 졸이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 건식 숙성이고, 냄비에 구멍이 나 국물이 질질 새서 맛이 다 빠져나간 건더기만 남은 것이 PSE 고기다. 게다가 수분을 처음부터 잃고 시작하는 건식 숙성 고기가, 놀랍게도 조리가 완료된 뒤 (스테이크) 최종적으로 남아 있는 수분을 체크해 보면, aging을 거치지 않은 고기와 비슷한 수분 함량을 보여준다! 못 믿겠다고? 하지만 진실이다. 왜 그렇냐고? 그건 스테이크 편을 기다리시라. 이런 카페X네 같은...대신 힌트를 드리자면 ‘왜 숙성을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를 권한다. 지방이 산화되어 새로운 향을 내는 물질로 변하는 것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일이다. 지방은 크게 포화지방산과 불포화지방산으로 나뉘는데, 포화지방산이 녹는점이 낮아 상온에서 쉽게 고체가 되는 쪽이다. 고기 중에서 전자는 소기름, 후자는 돼지기름이 대표적이다. 건강에 나쁜 쪽은 포화지방산인데, 혈관에 ‘37oC에서 굳어지는 기름’이 많이 돌아다니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해 본다면 답은 명확하다. <그림 46. 포화지방산과 불포화지방산> 불포화지방산은 이중결합으로 인해 분자구조가 꺾여 있어 차곡차곡 쌓이기 어렵다. 반면 포화지방산은 차곡차곡 쌓일 수 있다. 이는 분자들이 더 강하게 서로를 잡아당길 수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포화지방산이 더 쉽게 고체가 된다. 건강 문제와는 반대로, 숙성에 좋은 쪽은 포화지방산이다. 포화지방산이 산화되면 견과류 향이나 치즈 향이 나는 분자들이 만들어진다.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건 식품의 영역에 있다. 하지만 불포화지방산이 산화되면... 한 마디로 ‘쩐내’가 난다. 90일 건조숙성 쇠고기는 많아도, 90일 건조숙성 돼지고기는 찾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전자는 사람을 뽕 가게 만들지만, 후자는 잘못하면 사람을 훅 가게 만들기 때문이다.187)188) 복잡한 향이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면 건식 숙성이 옳은 선택이다. 건식 숙성이라면 미생물에 의한 추가적인 향도 얻을 수 있는데 비해, 습식 숙성은 진공 포장 상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지방이 산화될 일이 없다. 따라서 순수한 고기 맛만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장기간 건식 숙성한 고기보다는 습식 숙성한 고기를 고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럼 숙성은 대체 얼마나 오래 해야 하는 것일까? 좀 맥빠지는 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썩기 전까지는 무한정 가능하다. 뉴저지에 있는 미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정육점 Pat LaFrieda에서는 약 120일 숙성한 고기를 팔고, 라스베가스에 있는 유명 요리사 Mario Batali의 식당은 180~240일까지 숙성한 고기를 판다.189) 하지만 단순히 오래 둔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며, 습식 숙성의 경우, 고기를 냉장고에 너무 묵히게 되면 오히려 맛이 떨어진다. 다음 쇠고기 숙성 가이드라인을 천천히 읽으면서 내가 원하는 고기가 어느 정도 숙성된 녀석인지 알아보도록 하자.190) * 14일 미만: 약간의 연육작용은 있으나, 숙성 전과 큰 차이는 없다. * 14~28일: 자가소화로 인한 연육작용과, 아미노산 등 맛 성분의 생성이 완료된다.수분 손실을 빼면, 동일 기간 습식 숙성한 고기와 큰 차이는 없다. (습식 숙성의 경우, 이 이상 숙성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 * 28~45일: 미생물이 충분히 자라나서 고기에 새로운 향을 입히기 시작한다. 숙성된 치즈 향이 나기 시작하며, 산화된 지방 향도 강해지는 시점이다. 30~35일 숙성된 쇠고기가 가장 무난한 선택이며, 45일은 향이 꽤 강하다. * 45~60일: 다른 고기로 착각할 정도로 강한 향이 나기 시작한다. 소고기를 시켰는데 늙은 양고기인가 싶은 향이 나면서 희한하게 부드러운 것이 나왔다면, 숙성일자를 물어보라. 50일이 넘었다면 잘못 나온 것이 아니다.191)192) <그림 47. 시간에 따른 고기의 숙성> 일반적 숙성 온도인 3~4oC를 기준으로 하였다. 이는 대략적인 기준점이며, 숙성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건식 숙성은 수분이 증발하고 표면이 말라비틀어지는 등, 습식 숙성에 비해 고기의 손실이 크다. 약 4주 정도가 지나면 수율이 떨어지는 정도가 완만해지므로, 60일 이상 장기 숙성하더라도 고기 무게가 반으로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는다.193)194) * 최신 트렌드 - 돼지고기 건조숙성은 가능한가? 최근 들어 건식 숙성된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업체들이 생겨나면서, 이것이 유효한 방법인지, 광고를 위한 위험한 불장난에 지나지 않는지에 대해 논의가 분분하다. 습식 숙성이라면 지방 산패를 막을 수 있으니 장기간 숙성했다 하더라도 위험성은 거의 없지만, 건식 숙성이라면 위험한 균이 자라거나, 지방이 산패되어 맛은 물론 건강까지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쇠고기는 겉에서부터 썩어서 혹여 문제가 생겨도 껍데기를 썰어내면 그만이지만, 돼지고기는 속에서부터 썩어나와서 습식은 모를까 건식 숙성은 택도 없다’는 것이 고기 좀 만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다. 그러니 돼지고기 숙성에 도전하는 것은 콜럼버스가 멀쩡한 항로를 놔두고 서쪽의 망망대해로 배를 몰아 간 것에 비견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듯, 돼지 숙성에 도전한 이들은 블루오션을 발견했다. 쇠고기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기간(1주 전후) 건조 숙성을 진행하면, 고기가 부드러워짐과 동시에 돼지의 잡냄새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상과는 달리, 장기 건조 숙성을 통해 쇠고기처럼 숙성 향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이제 돼지고기도 숙성시켜 먹는 시대가 온 것이다. 충분한 과학적 데이터가 쌓여 있는 쇠고기 건조숙성과는 달리, 돼지고기 건조숙성은 역사가 극히 짧고 외국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로, 숙성 과정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면 어떠리. 골치아픈 일은 과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으면 그만 아니던가. 좋은 고기를 키워내는 법, 좋은 고기를 고르는 법을 모두 배웠다. 이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 최초의 조리법인 구이에 대해 살펴볼 차례이다. --------------------------------------------------------------------- 주)181) 이 과정에 필요한 지령을 전달하는 단백질 중 하나가 그 유명한 암 억제 단백질 p53이다. 멀쩡한 세포가 암세포가 될 경우 자살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p53 같이 중간에서 자살 명령을 전달하는 단백질들이 망가지면 그 세포는 자살 명령을 무시하고 무한 증식하게 된다. 182) 결합 조직은 근섬유를 ‘감싸고’ 있으므로, 이들이 수축하면 필연적으로 근섬유를 쥐어짜게 된다. 183) 따라서 ‘60일 습식 숙성한 쇠고기’나 ‘3주 습식 숙성한 돼지고기’는 무의미한 광고문구일 뿐이니, 이런 헛소리에 낚여 비싼 돈을 치르지는 말자. 단, 건식 숙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84) 단, 얼음물에 숙성하는 냉침숙성의 경우, 낮은 온도 탓에 일반적인 습식숙성보다 더 긴 기간이 소요된다. 185) ‘오늘 잡은 소’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육회와 내장은 ‘오늘 잡은 소’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이다. 특히 육회라면 사후강직이 풀리지 않은 고기에서 오는 ‘차진 식감’을 즐기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고기를 굽게 되면 이 ‘차진 식감’이 ‘질기고 퍽퍽한 육질’로 변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186) https://www.lafrieda.com 187) Nathan Myhrvold et al., 『Modernist Cuisine』, Vol. 3, p.41 188) 최근 장기 건조숙성 돼지고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고기에 포함된 수분이나, 표면에 자란 다양한 미생물들이 보호막 역할을 하여 지방이 산패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과학적 분석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189) Dashmaa et al., Dry aging of beef; Review, Journal of Animal Science and Technology, 2016 190) 숙성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얼음물에 넣어 숙성하는 경우라면 이것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 191) 엄밀히 말해 양고기 향과는 다르다. 충분한 체다치즈에 잘 숙성된 고다치즈를 얹고, 적당량의 블루치즈(뭐?)를 추가하여 은은한 쇠고기 누린내와 적당히 버무린 듯한 향이 난다.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192) J. Kenji-Lopez-Alt, 『The Food Lab』, pp.427~428 193) 습식 숙성의 수율이 100%가 아닌 이유는 정형 과정에서 상품가치가 없는 지방덩어리나 잡다한 부위들을 잘라내 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숙성 여부와 관계없이 발생하는 손실이므로, 건식 숙성으로 인한 추가적인 손실은 습식 숙성 수율에서 건식 숙성 수율을 뺀 값에 해당한다. 194) Dashmaa et al., Dry aging of beef; Review, Journal of Animal Science and Technology, 2016 및 Jeff W. Savell, 『Dry-aging of Beef, Executive Summary』를 참조